2011년 5월 9일 월요일

Support Structure


Support, participation, and relationships to equity

Conversation between Celine Condorelli and Eyal Weizman


2011.5.8 김경은

발제라기보다는 대담의 정리/요약입니다.


[대담자소개]

Celine Condorelli 예술, 건축분야에서 일하며, 영국 버밍엄 Eastside Projects라는 공간 설립 멤버 중의 하나이다. Support Structure 아티스트-큐레이터인 Gavin Wade 그녀가 2003년부터 2009년까지 전시, 세미나, 워크샵등의 형식으로 진행해온 프로젝트다. (http://www.supportstructure.org/)프로젝트의 연장선에서 Eastside Projects (http://www.eastsideprojects.org/) 공간이 설립되었다. Eyal Weizman 건축가/건축이론가로 여러 건축리서치를 진행해왔으며 저서로 이스라엘 식민지 West Bank, Gaza 정치적 개발과정을 연구한 있다. 골드스미스 건축리서치센터의 디렉터로 있다.


[Support Structure 소개]


Support Structure 건축적 인터페이스이다. Support Structure 사용자에 의해, 맥락에 따라 계속적으로 재정립되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Support Structure 물건뿐만 아니라 활동을 포함하며, 기존 공간을 변화의 계기로 재고찰하는 것을 돕는다. Support Structure 건축가 Celine Condorelli 아티스트 Gavin Wade 협업 프로젝트이며, 목적은 포괄적이기 보다는 구체적인, 보편적으로 적용가능한 Support Structure 만드는 것이다. — 홈페이지 서문에서 발췌


Support Structure Manifesto (2004)

Celine Condorelli & Gavin Wade


1 우리는 물체와 정보, 활동을 지지할, 보편적으로 적용가능한 Support Structure 디자인하고 만들 것이다.

2 이를 위해 우리는 Support Structure 배움의 과정으로 놓을 것이다.

3 Support Structure 일련의 다른 활동과 장소와 관련지어 개조과 발전의 과정을 명시할 것이다.

4 Support Structure 보편적이되 결코 포괄적이지는 않으며, 각각의 실행안은 특정한 상황에 특수한 것이다. 각각의 결과물은 다른 결과를 만들 것이며, 누적의 과정을 통해, 번역의 과정을 포함할 것이다. Support structure 전시가 아니지만, 전시의 아이디어를 번안하고 촉진하는 도구로 사용될 있을 것이다.

5 Support Structure 임기응변과 영속성 사이에 자리잡은 미학을 통해 일시성을 구현한다.

6 비계(Scaffolding) 조립형 벽체같은 기존의 Support system 20세기 초반의 급진적인 전시디자인의 예들--Frederick Kiesler's L-type, T-type 디스플레이 시스템, El Lissitzky 구조주의 예술을 위한 , Lilly Reich 벨벳 실크 카페등-- 결합될 것이다.

7 Support Structure 사용자와 시스템 간의 인터페이스에 초점을 둠으로써 장소의 잠재성에 대해 묻는다. 이것이 Support Structure 장소 내에서 개인들을 위한 새로운 인프라스트럭쳐를 만드는 시작점이다.

8 Support Structure 물질적, 개념적으로 장소의 재고찰과 조정을 통해 변화를 유도한다.



Support Structure 작업:


phase 1 - in support of Art, ‘I am a Curator’, Chisenhale Gallery, London (2003)

phase 2 - in support of Corporations, The Economist Plaza, London (2004)

phase 3 - in support of Community, Portsmouth Multicultural Centre (2004)

phase 4 - in support of Politics, Greenham common (2004-2005)

phase 5 - in support of Education, Essex University, artist residency, exhibition (2005)

phase 6 - in support of Urban Renewal, Eastside Birmingham (2007)

phase 7 - in support of Shopping, GIL, Guang Zhou, Beijing, Shanghai (2007)

phase 8 - in support of Institutions, Arnolfini, Bristol, ICA, London (2008)

phase 9 - in support of Public, Eastside Projects, Birmingham (2008)

phase 10 - in support of Support, Publication, Sternberg Press (2009)

(각각의 내용은 홈페이지 참조)



[대담 본문]

대담은 Condorelli 자신의 작업에서 주요하게 다뤄왔던 Support 대해 설명하면서 시작한다. Condorelli Support 참여나 갈등 같은 관계처럼, 사람, 물건, 사회적 형식, 정치적 구조 간의 일종의 관계라고 말한다. 그녀에 따르면 Support 우리가 어떻게 변화를 향해 함께 나아갈 있을지에 대한 연구를 가능케하며, 단순한 입장이 아니라 실천으로서 정치적 상상의 실현에 작용한다. Support 문화구조 혹의 사회의 틈새에서 발생할 있으며, 유약함의 선포이자 협의의 실천이다. Support 재평등화의 형식으로서 상호의존성의 매개이다. Support 같은 관계를 정의하는 것은 행동(action) 향한 다른 범주를 목표로 한다. Support 만드는 상호의존적 관계는 잠재적 커뮤니티와 연대, 적극적 관계를 가능케한다.


Eyal Weizman Condorelli 말하는 support 개념을 복지국가의 흥망성쇠와 관련짓는다. 그에 따르면, 복지국가는 사회적 융합과 통일의 판타지에 기반하고 있었으며, 다문화, 다인종 메트로폴리스에 존재하는 차이들은 요구의 범주로 평등화되어 버렸다. 그는 "support" 용어를 복지국가의 정치를 읽는 비평적 범주로 사용할 가능성을 본다. 70년대 석유파동 이후, 균질한 복지국가의 판타지 위에 세워진 support NGO들이 제공하는 분열된 형식의 support 대체되었다. , support 특수화되고 개개인에게 맞춰지기 시작했으며, 갈등관계에 있는 이데올로기와 이해관계의 다양성에 기반한 것이 되었다. 이와 연관지어 Weizman support 특정 조직의 소규모 차원에서 어떻게 표현될 있는지, 그것이 어떻게 대안적 형식이 있는지를 묻는다.


Condorelli 하나의 자치 커뮤니티를 주장하는 통합된 공공영역의 아이디어는 사라졌으며, 공공공간의 형성은 공공역역에서의 참여 그리고 정치적 사회적 적극적 참여의 외적 특성만을 갖춘 특정한 행동을 강요하는 하다고 말한다. 이어서, 이와 다른 형식의 참여를 상상할 있게 하는 구조는 어떤 것이며, supporting 실천을 통해 정치적 상상력의 형식을 옹호하는 대안적인 인스티튜션을 만들 있을지를 묻는다. 그녀는 일견 바람직해보이는 아래로부터의 support 또한 support Structure 자체의 순수한 잠재성과 (누군가는 일해야 하는) support strucrue 관료화, 기관화 사이의 모순을 가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모순에도 불구하고, 이런 가정을 통해 적어도 우리는 무엇이 support되고 있는 것인지 질문할 있으며, 검토에의 가능성이 열리면 인과 역시 열리게 마련이며 이것은 필연적으로 폐쇄와 소멸을 함께 가져온다고 말한다. 그녀가 보여주는 예는 Support Structure 작업 중의 하나인 Portsmouth Multicultural Group작업이다.


In Support of Community 소개

Portsmouth Multicultural Group 지원 아래, "다문화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다문화센터가 무엇이 있으며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탐구했던 작업이다. 이들은 '다문화적'이라는 용어를 정의하고 확장하기 위해 일종의 도서관을 만들었는데, 여기에는 이들이 지역신문을 통해 "다문화주의" 정의에 대해 묻고 책을 추천받아 만든 움직이는 아카이브 뿐만 아니라, 다문화의 개념을 옹호하고, 촉진, 발전시키기 위한 방법을 찾는 일련의 워크샵과 토론이 포함되었다. 더불어 이들은 Multicultural Festival 아이덴티티를 제안하면서, Multicultural Centre 일년단위의 행사를 기획하는 Multicultural Festival으로 운용되길 제안하였다.


작업은 다문화센터 내의 사람들이 기관의 아이덴티티와 도시, 시민들과의 관계에 대해 묻는 계기가 되었는데, 센터 내의 몇몇 주요 인물들은 이러한 기관의 구조 내에서 그들의 목적을 달성할 없다는 것을 깨닫고 센터를 떠났다. 이것은 support 단순히 보상 혹은 요구의 충족 차원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고 탐구할 있는, 그리하여 폐쇄, 종결로도 이어질 있는 가능성을 제공할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특정 조직의 소규모 차원에서 support 실천은, 자율성과 독립성의 추상적 이해에서 벗어나 정치적 주체로 나아가는, 상호간의 평등화 과정을 생각할 있는 계기가 된다.


Weizman 위기지역에 개입하는 방식이 발전해온 과정을 들어, 소규모차원의 support, 그러한 support 결과물이 가지는 모순에 대해 덧붙인다. 70년대까지 위기지역에의 원조는 대부분 적십자나 유엔을 통해 이뤄졌으나, 나이지리아내전이후 비정부적인 사적재정에 기반한 직접 원조가 급격히 늘어났다. 대표적인 예가 국경없는 의사회인데, 충분한 고려가 결여된 그러나 뜻은 좋았던 직접적인 개입들은 "인도주의의 모순" 빠지기 시작했다. (정권연장을 돕는 격이 된다던가하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대표적인 또한 국경없는 의사회인데, 이들은 기자들조차 출입이 불가능한 지역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동시에 지역의 실상을 전하는 목격자가 된다.


Weizman Condorelli에게 어떻게 공공영역의 생산과 관련한 작업을 예술의 맥락에서 진행하게 되었는지를 묻는다. (Condorelli 건축을 공부했다.)Condorelli 문화영역에서 일하는 것은 일종의 정치적 자리매김의 과정이라고 말하며, 협의(negotiation) 대해 설명한다. 그녀에 따르면 협의는 민주주의에서 억압된 요소 중의 하나로, 스스로의 약함을 선포하는 타협을 포함하게 마련이다. Support 또한 원칙의 적용이라기 보다는 정의되지 않은 것을 향한 대화이자, 앞서 말한 협의의 과정이라 있다. 건축과 비교하자면, 권력의 건축적 구축은 자체가 절대 개입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개입의 가능성 자체는 그것을 가능케하고 유지하고 있는 기관에 의해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며 따라서 폐쇄적일 밖에 없다.


그녀는 문화, 정치, 경제가 모두 도구이자 내용, 목적, 예술적 실천의 대상이 있다고 말하며, 기존의 폐쇄적 구조와 협의를 시도 있는 것이 예술이라 말하는 하다. 분야가 권력구조, 사회적, 지역조직과 갖는 관계에 대해 심문하는 것은, 공간과 (사회적, 미학적, 정치적) 협의의 공통적 이해에 관심을 갖는 작업에는 필수적인 시도라 있다. 예술 혹은 건축에서 맥락적인 작업은 맥락을 구축하고 제시하는 뿐만 아니라, 작업자체가 개입하는 환경을 적극적으로 생산하고 조작하는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조건들로부터 정치적인 생산으로 맥락의 이해가 바뀜으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있다. 맥락에 관여할 있는 것은, 건축적 개입뿐만이 아니라, 잠재적 조직, 권력과 제어 구조가 작동하는 (가시적, 비가시적인) 암시적인 관계(connection)이기도 하다.


이어 이들은 Weizman West Bank 관련한 작업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스라엘이 그들이 차지한 영토를 일종의 제어와 전쟁의 도구로 변화시키는 과정을 살핀 작업이다. 이스라엘은 공포와 분리, 시각적 제어의 정치, 거주, 장벽과 다른 안전장치들을 완벽하게 제어하며,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맥락에서 실제와 가상의 국경을 강화해왔다. 이스라엘 점령의 건축은 전지구적 정치적 과정을 가속화하는 것으로 있으며, 이는 자본주의적 지구화와 공간적 악영향의 가장 끔찍한 시나리오이다.) Condorelli 작업을 통해 건축에서의 support 개념이 가지는 가능성( 한계) 대해 이야기한다. 건축은 정치적 기관의 형식을 support 있고, 정치적 기관이 건축을 support하는 것도 가능하나, 건축이 기관을 제어하거나 결정할 수는 없다. 물론 건축은 물질적이고 형식적인 차이를 만들 있으며 프로그램을 통해 일부 관계를 생성하는데 관여할 수는 있으나, 또한 물질적 조건을 support하는 것이 결국 기관이고 이러한 정치적 공간을 결정짓는 것은 형태가 아니라 공간적/정치적/일시적 맥락임을 생각하면 한계는 명확하다.


Condorelli 건축과 공간적인 형식은 그를 support하는 기관에 의해 존재할 있으며, 이것이 우리가 예술 혹은 건축을 필요 혹은 결핍과 관련한 실용적 실천으로 보는 것의 문제점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율성의 이상은 독립성의 신화에서 벗어나, 공평성과 상호의존성의 이해를 추구하며, 근본적으로 복잡할 밖에 없는 사회적 영역에의 개입으로 부터 벗어나는 것이라 말한다. 이어 그는 어떤 가능한 결론이나 해결책에 다다르지 않기 위해 시각적인 것을 배제하려는 supporting 실천들이 있다고 말한다. 특정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 관용, 협의등을 통한 구축, 생산, 상상의 과정으로 이미지를 대체하며, 공공영역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언제나 과정 중에 존재하기 때문에, 질문하고 목소리를 부여하고 구조와 플랫폼을 구축하고 초대하는 등등을 통해 과정을 물화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관련 읽을거리:


Support Structure 홈페이지

http://supportstructure.org


Eastside Projects 홈페이지, 블로그

http://www.eastsideprojects.org/

http://www.weareeastside.com


Eyal Weizman 인터뷰 (Hollow Land 작업 관련)

http://www.cabinetmagazine.org/issues/9/wall.php



5월8일 일/ 발제문/ 클레어 비숍

Antagonism and relational aesthetics (by Clare Bishop)

2011.05 현시원 발제

■ 는 클레어 비숍이 글에서 제시한 소제목으로 이 발제는 발췌한 몇 소제목에 따라 논의할만한 내용과 질문들을 간략하게 전달한다.

■ 팔레 드 도쿄!

: 글은 '팔레 드 도쿄'로 시작한다. 2002년 파리에 문을 연 '팔레 드 도쿄'는 미술품을 소장하는 전통적인 미술관/갤러리와 다른 방식으로 현대미술을 다루는 공간이다. 이곳이 필자에게 의미 있는 이유는 2000년대 유럽 미술계의 뚜렷한 경향이 되는 '실험실 공간'의 상징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실험은 공동으로 이뤄지는데 대표는 평론가이자 큐레이터인 제롬 상과 보드로 현대미술관의 전 큐레이터이자 예술 간행물의 에디터 니콜라 부리오다.
관료적인 수집에 묶인 미술관으로부터 스스로를 구분하기 위해 ;실험실' '공장' 등의 은유를 사용한 이 '공동' 디렉터 체제의 큐레이팅은 열린 결말, 상호작용, 종결의 저항이라는 특성을 가진 작품을 끊임없이 불러들인다. 이는 예술작품 자체가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에 기반을 둔 것이며 뒤에 논의되는 옴베르트 에코, 롤랑 바르트 등의 사상과 연관된다.
: 클레어 비숍은 선언적으로 서두에서 이러한 '실험실'적 경향에 대해 두 가지 측면에서 날을 세운다. 첫째, 아이덴티티를 고의적으로 흐린 작품의 성격을 분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 열린 결말은 소위 은유일 뿐 관람객들에게 또는 미술 관계자들에게 전혀 무엇을 재고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소위 실험실이 여가 혹은 오락 공간으로 마케팅 되기 쉽다는 점이다. 이 말은 국내 예술창작센터 등 많은 창작센터 자체가 '소풍오세요' 등의 은유를 사용하는 것을 떠올려봐도 쉽다.

: 작품뿐 아니라 미술관 내 시설을 동시대 작가들에게 개조, 디자인을 밭긴 뒤 그 공간을 예술작품으로 선보이는 사례도 많다. 이것에 관해 필자는 할 포스터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이 시설은 다른 방식으로 빛날 수 있는 작품들을 가려버린다. 그 곳 자체가 스펙터클이 되며, 문화 자본을 모으고 디렉터-큐레이터가 스타가 된다"

1. 할 포스터가 말한 스펙터클은 비단 공간의 문제만은 아니다. 다른 방식으로 빛날 수 있는 작품들을 특정 창작 스튜디오, 또는 봄 페스티발 등의 행사로 묶어내는 데 있어서 큐레이터나 디렉터들이 조심해야 할 부분이 과연 예민하게 고려되고 있는 것인가 의문의 여지가 많다. 국내의 흐름들은 위 실험실적 경향과 어떻게 비교해 생각해볼 수 있을까.
2. 프로젝트 기반의 '실험실' 경향은 새로운 프로덕트들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있다. 이 프로젝트들은 '실험실'의 명성을 위한 것은 아닌가? 아니면 작가들의 작품 활동을 위한 것인가? 작품 활동이라는 액티베이션과 새로운 실험실의 전략들은 구분될 수 없는 것일까?

■ 관계미학 + 미적 판단
-클레어 비숍이 관계미학에 대해 의심하는 부분은 부리오가 90년대 예술이 60년대의 그것보다 정치화가 덜하지 않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부리오가 주장하는 '관계적 예술'에서 관람자가 집단적인 사회적 존재, 나아가 공동체를 실질적으로 만드는 수단(혹은 주체)이 될 수 있음을 주목한다. 환경을 전면적으로 바꾸려는 시도보다는 부리오가 가지고 있는 마이크로토피아적 신념을 보여주는 부리오 자신의 문장은 "더 행복한 내일에 걸기보다 현재의 이웃들과 가능한 관계들을 고안해 내는 것이 더 긴급해 보인다"
-부리오가 책에서 언급한 몇 작가들은 계속 반복되는 바, 이들 관계예술의 특징은 첫째 공간을 응시하기 만들기보다 공간을 유용하게 만들었으며/ 둘째 영국 작가 등의 브랜드 화된 개성과는 다르게 피처링, 리믹스, 디제잉, 프로그래머로 진입 등 '협업'하는 작업으로 누가 누구의 작업을 했는지 알 수 없게 되었으며 셋째 큐레이팅 행위 자체에도 서로가 서로를 큐레이팅하기도 했다.
-클레어 비숍은 본 글에서 부리오가 대표적으로 언급한 리크릿 티라바니자(자기성찰 없이 유비쿼터스 적 재현을 보여주고 있는 형국)와 리암 길릭(디자인과 미술의 경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활동하는지 애매모호. 작품이 배경이 된다는 사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기뻐하기는 하는 건지 등)을 언급하며 이 둘이 독립적 시각성을 넘어, 상호주관적인 관계에 우선권을 두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는 점을 말한다. 그러나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도대체 왜 '상호주관성'이 의미가 있으며 이것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이미 1960년대 옴베르트 에코가 '열린 작품'의 미학 즉 열린 해석의 가능성을 이야기했는데(수용의 문제), 클레어 비숍이 보기에 '열린 작품/ 움직이는 작품'의 시학은 모든 예술이 가질 수 있는 잠재적인 특성인 것에 반해 부리오는 이를 일부 작품에 특정적으로 한정하는 우를 범했다. 마치 이것이 작가가 독특하게 갖고 있는 예술적 의지의 문제인 양!

1. 부리오는 열린 결말의 참여 형 작품들을 평가하는 척도가 미학적일 뿐 아니라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작품 구조와 대화의 질은 절실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부리오에 따르면 우리는 관계예술 작품이 만들어내는 관계를 판단해야만 한다. 그러나 막상 티라바니자가 만든 음식은 누구를 위해? 어떻게? 왜 요리된 것인가? 정말 전시장에서 음식을 먹는다는 행위는 어떤 관계를 만들어내기나 할 수 있었던 것인가. 알 수 있는 구조가 취약하다.
클레어 비숍이 질문한 것을 다시 가져온다면, "어떤 종류의 관계가 누구를 위해 그리고 왜 만들어져야 하는가"

■ 적대+

: 클레어 비숍은 이제 본격적으로 명확한,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작가들의 작업을 보여주기 이전에 '적대'에 관한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상탈 무페의 '적대' 관념을 꺼내온다. 라클라우와 무페는 '제대로 된' 민주사회는 모든 적대가 사라진 사회가 아니라 새로운 정치적 한계가 지속적으로, 그리고 그것이 논쟁으로 이어지는 사회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적대는 불완전한 존대들끼리 일어나는 여러 개의 과정이며, 이 관계는 단일한 전체성이 아니라 각자의 아이덴티티를 불확실하고 약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비숍은 '적대' 개념을 통해 관계미학이 만들어낸 관계들이 부리오의 주장과는 반대로, "본질적으로 민주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부리오가 말한 작가들이 일궈낸 관계는 완전한 주체성과 연대가 있는 공동체 내에서 성립된 것이기 때문이다.
: 쉽게 말해 303 갤러리에서 있었던 트리바니자의 작품 안에서 대화한 사람들은 미술 잡지 편집장이거나 갤러리 대표, 이들은 서로 홍보하거나 의견을 맛보기만 한다. 어떤 이들은 크리바니자 작업에서 '피난처' 운운하지만 도대체 누구를 위한 피난처란 말인가? 관계미학의 작업들은 아주 느슨하게 말할 때에만 정치적일 수 있다. 대화의 내용은 그 자체로 민주적일 수 없다! 열린 결말과 관객의 해방(어떤 자유)에도 불구하고 사교모임으로 전락한다.

1. 콜렉티브의 활동들. 어떤 사교모임?
2. 어떤 대화가 그렇다면 정치적일 수 있을까.

■ 비동일시와 자율성 +관계 적대주의

: 산티아고 시에라의 작품은 관계를 내세우지만 티라바니자와 다르게, 그가 작업하는 공간의 경제적, 사회적 리얼리티의 지표 화된 결과를 도출한다.
: 미술계에서 배척당하는, 때로 사회 현실에서 배척당하는 집단들을 노동력에 해당하는 돈을 주고 미술계, 작업으로 불러들인다. 누군가가 사회적이며 법적인 배척으로 인해, 분리된 상태에서만 소통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 예술 관람객들에게 어떤 집단 또는 대상과 동일시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 허쉬호른도 '열린 결말'이라는 개념을 관객들이 작품을 오나성한다-식으로 풀지 않고, 자굼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가에 근간을 두고 있다. <바타이유 기념비> 등의 작업.
허쉬호른이 말하길
"나는 상호적으로 작동하는 작업을 하고 싶지 않다. interactive. 나는 작동하는 active 작업을 하고 싶다. 내게 예술작품이 일으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활동은 사유하는 활동이다. 앤디워홀의 <큰 전기의자>는 미술관 벽에 걸린 그림이지만 나를 생각하도록 만든다. 작동하는 작품은 먼저 나 자신이 최선을 다하도록 요구한다."

관계적 적대
: 나와 다른 사람, 나와 공동체에 대해 이 관계를 재고할 수 있는 실제적이고 논쟁적인 동기의 제공. 이것이 오늘날 필요한 관계를 다루는 미술이 할 수 있는 일일 것.

2011년 4월 25일 월요일

송상희 개인전 - 세계인들이 평화롭기를 243.0MHz



2011. 4. 29- 6. 4
Opening Reception: 4. 29 pm 7
www.artbehive.com

우리는 우리의 죽음에 준비가 되어있을까? 누군가에게 당연한 죽음이 존재할까? 송상희의 설치작업 <죽을 준비가 되어있는>(2006)은 자신의 영정을 직접 바라봄으로써 죽음을 직면하고 있다. 죽을 준비가 되었다는 이 여인은 아직 움직이고 있으나 온전하지 않은 형태의 다리와 머리, 그 위에 반짝이는 원형의 띠를 가지고, 이미 죽은 후의 상태인 지, 혹은 그 사이 어디쯤인지 혼동되는 선에 서있다. 처음부터 기계였던 하이브리드 신체는 살았었다고도, 살았다고도, 이미 죽었다고도 말할 수 없는 어느 지점에 존재한다. 송상희는 이번 전시에서 이렇게 실은 죽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자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일본 오소레산에서 촬영한 <세계인들이 평화롭기를 Peace to all people in the world>(2010)도 출품된다. 일본의 전설에 따르면 오소레 산은 지옥으로 가는 문, 혹은 영산으로 알려져 있다. 유황 냄새와 화산활동의 잔해로 황량한 기운이 가득한 이 산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영혼이 모여 있다고 여겨졌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아이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돌탑을 쌓고 그 앞에 사탕이나 여자아이 머리핀, 우유, 바람개비 같은 것을 놓고 기도하고 쓸쓸히 돌아갔다고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 정부는 반정부적 지역에 위치한 오소레 산에 대한 언급을 회피 했으나 최근에는 관광을 목적으로 일년에 두 번 위령제를 개최하고 있다. 송상희는 자신의 두 발에 카메라를 묶고 이 지옥의 산을 걸어 다니면서 촬영한 영상 위에 최치원의 [쌍녀분전기(雙女墳傳記)], 즉 최치원과 두 자매귀신의 대화를 자막으로 입혔다. 바람개비 소리만 가득한 회백색 산을 걸어 다니는 작가의 행위는 죽은 자들을 위해 지옥을 걷는 그녀 나름의 위령제이다. 공식적이거나 누군가 알아주기 위해 여는 화려한 제사가 아니더라도 마치 부모들이 작은 물건들로 자식들을 위로하듯 죽은 자들과 대화하는 것이다.

송상희의 이러한 시도는 사적 경험에서 출발한다. 이 작업은 작가가 7년전 일본 레지던시 당시 사할린 바다와 접해 있는 일본의 최북단 소야(Soya)를 방문했을 때, 그곳의 작은 비석에 적혀있던 “세계인들이 평화롭기를 Peace to all people in the world”이라는 문구에 근간을 두고 있다. 육영수 여사 시해 사건이나, 광개토대왕비 등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것으로 해석되는 송상희의 작업들은 실은 작가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 한 시대, 어느 나이대의 여성으로서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물음에서 발아한 것이었다. 이러한 질문은 나/여성이라는 인식의 주체가 사회 속에서 어느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가를 의문시하는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길이고 그 과정의 혼란을 해소하는 수단이다.

스스로에 대한 고민은 결국 사회와 시스템에 대한 물음으로 고리를 잇는데, 사회에 대한 이해를 통해 여성의 시선/관점에서 사회를 정확히 바라보고 역으로 사회 안에서 작가가 위치하는 지점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인들이 평화롭기를 Peace to all people in the world>의 배경인 소야는 1983년 9월, 대한항공 007편이 구 소련 전투기의 공격으로 격추되어 폭파된 곳이다. 이 사건으로 미국 하원의원을 포함한 탑승객 269명이 사망하였고 같은 해 9월 유가족을 포함한 53명이 사고 현장을 방문했으나 시신을 찾지 못하였다. 사건 후 2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피해자들에 대한 정확한 내용이 전달되지 않고 여러 가지 음모설이 난무하고 있다. 냉전이 극한에 이르던 상황에서 구 소련의 의도된 공격이었다는 추측도, 탑승객들이 사망하지 않았다는 추측도 확인된 바는 없다. 드로잉 <1983>(2010)은 당시 냉전상황을 묘사하는 구 소련 서기관의 기록과 미국 대통령의 코멘트들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진실이 무엇이건 간에 사건과 무관한 수 많은 사람들이 시신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는 사실만이 분명할 뿐이다. 이러한 사회적 사건 다루기는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작가 자신이 처한 시스템을 올바로 보기 위한 노력으로, 나/여성의 시각에서 사건의 표면에서 비존재하는 입장들을 섬세하게 밝혀내는 것이다.

하지만 왜 굳이 20여년이 지난 이야기를 지금 풀어 놓고 싶은 것인가? <243.0 MHz>(2011)는 1983년 대한항공 007 사건 당시 구 소련 요격기 조정사와 공군 사령관 쿠르노크흐의 교신 내용을 중심으로 한다. 마치 라디오가 채널을 맞추듯 유행가가 흐르다가 잡히는 방송의 내용은 당시 대화 상황을 현재라는 시간에 위치시킨다. 송상희는 이미 <버려진 알>(2003) 등의 작업에서 신화나 과거의 이야기를 현재에 위치시키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이러한 사건, 이야기의 재배치는 과거에 있었던 그 일들이 형태를 바꾸어 현재에도 존재한다는 작가의 믿음이다. 프로이트가 이야기 했던 것처럼 잊혀진 역사는 스스로 반복되고 현재는 과거의 또 다른 형식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폭파사건이 20여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현재도 어딘가에서 침략, 전쟁, 그리고 종교에 의해 많은 영혼들이 소리 없이 사라지고 있다.

1983년, 소련측에서 한국 측에 유일하게 돌려준 것은 탑승객들의 얼린 신발들뿐이었다. 작가는 아직도 탑승객들이 신발을 벗은 채로 태평양 바다 어딘가에 그렇게 떠다니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송상희의 <신발들 shoes>(2010)에 등장하는 검은 바다에 떠있는 신발들은 존재의 출처와 형태를 불문하고 조용하고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한다. 스피박이 “하위 주체(subaltern)는 말할 수 있을까?”라고 한 것처럼 신발들은 말이 없다. 그러나, 송상희는 어디에선가 떠다니고 있을지 모르는 신발들처럼, 말없이 떠도는 하위주체들에 조용히 목소리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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